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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생한 아이들의 웃음
스물넷이 하는 얘기란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을까. 기차 안에서 멘티들에게 해줄 말들을 생각하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전날 세 시간 남짓 자고 기차를 탄지라 졸음이 밀려왔다. 만나면 잘난 척은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정신이 들 때 즈음 천안아산역에 도착해가고 있었다. 서울 일행과 합류하고 내가 멘토 중 제일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의 나이가 아이들에게 내 말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겨진다. 중부방송에 들러서 우리조의 아이들을 만났다. 세 명이었다. 다른 조에 비해 수가 적은 편이었다. 아이들은 그룹홈에서 보아온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었다. 정상적인 환경 아래서 모범적으로 공부를 해온 친구들이었고 품성 또한 예의바르고 배려심이 깊은 친구들이었다. 같이 밥을 먹고 걷고 떠들고 웃으며, 아이들의 장점과 단점들 그리고 생각들까지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조언을 해주되 그것이 부정확하거나 불필요한 조언이라고 생각될 경우 말을 아끼려했다. 무엇보다 내가 노력한 것은 서로 간에 벽을 허무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진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 조 아이들은 제각기 개성이 뚜렷했다. 영주는 사회를 일찍 경험해서 그런지 사람들 대하는 것에 능했다. 넉살이 좋았고 하고 싶은 것이 명확했기에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매우 높았다. 나는 내 나이또래의 친구들 중에서도 그만큼 솔직하고 당당하며 배려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지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자 글쓰기에 능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친구였다. 감수성과 배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 깊어 진지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고 가벼울 때는 분위기에 맞추어 갈 줄 아는 친구였다. 대학에 가면 교육학을 전공하기 희망했다, 원래는 문예창작을 하고 싶어 했으나 문창을 등 외시 하는 현실을 보고서 포기를 하고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취미로 글쓰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활 중 문학 동아리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전 문학 동아리 회장이었던 나는 대학동아리의 다채로운 문화에 대해 얘기해주면서 예지와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미지는 조원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 아직까지 진로가 명확히 그려지지 않았고 문과, 이과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친구였다. 같이 있는 내내 명랑한 모습을 보여줬다. 어린나이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에 능했다. 항상 웃고 있는 모습과 친근함이 느껴지는 말투는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머물게 할 것이라 느껴졌다. 캠프 레크레이션이 끝나고 취침 전에 아이들을 상담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들의 학업과 진로, 취업에 대한 걱정을 들으며 어떤 책임 없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경험이 없기에 놓칠 수도 있는 선택지들을 제시해주려고 노력했다. 상담은 캠프 끝날 때 까지 뿐만 아니라 캠프 종료 후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단찮은 조언임에도 ‘존경한다.’라고 까지 말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오히려 고마웠고 더 많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 아이들과 미래에 대해 나눈 순간들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대전역에서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계속 연락하자는 얘기를 거듭하며 헤어졌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따스한 배려심, 또 삶에 대한 긍정과 그 나이에 맞는 열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곧 사회에 나갈 나는, 어쩌면 취직에 가장 임박한 다급한 시점에서 모처럼 너무도 따스한 추억을 만들고 현실로 돌아가게 된 것 같다. 기억이 점점 아름답게 수정되어 가는 걸 느끼면서 이만 글을 마치려 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장학생들한테도 권하고 싶은 추억이다. 이런 기회를 주신 재단과 티브로드 직원 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 말씀을 드린다. 부산대학교 국내학사 23기 변승혁
관리자
2015.09.03